퀴즈쇼 - 김영하

2020. 3. 21. 11:38문화생활/책

 

퀴즈쇼 - 김영하

 

이상하게도, 그다지 재미있게 읽었다고 느껴지지 않는 책들 중에 강한 인상과 상상의 잔여물이 깊게 남는 경우가 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나, 박민규 아, 박민규책은 다 재미있게 읽었지 참.. 그럼 뭐지

읽은 순간에 엄청난 집중을 해서 그게 뇌리에 강하게 남은건가? 

 

박민규의 그 못생긴 여자가 나오는 소설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한강작가의 소설 등등 읽은지 꽤 오래된 책인데도, 간혹 일을 하거나 시간을 보낼 때, 그 소설 속의 배경이 사진처럼 머리속에서 떠오른다.

스쳐 지나갈 때도 있고,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그곳이나 환경이 그 소설속인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글을 읽으면 그 장면이 이미지화, 영상화 되는것이다.

재밌다.

 

아무튼, 김영하 퀴즈쇼도 그렇게 될 듯하다.

왜냐하면 엔딩에 당황해서 육성으로 뭐야! 를 외쳤기 때문이다.

다른 김영하 소설에서도 그랬던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서는) 갑자기 끝이 났다.

종이 책으로 본게 아니라, 전자책으로 봤던 터라,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이 안된채 쭉쭉 몰입감있게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끝나버렸다.

 

김영하의 퀴즈쇼는, 2007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이다.

이미 당시에 신문에서 연재소설은 지는 해였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일보 문학담당자가 김영하를 설득시켜 연재했다고 한다.

 

퀴즈쇼는, 20대 백수 청년 이민수의 얘기이다.

넉넉한 줄로만 알았던, 부모 양친을 잃은채 고모 손에 나고 자라던 이민수는, 고모의 죽음과 함께 몰려온 고모의 부채와 함께 순식간에 알 그지 생그지가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오랜시간 살던 집까지 잃어버린, 그래서 큰 집에서 살다가 갑자기 고시원 쪽방에서 거주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이텔과 같은 인터넷 상에서의 모임이 주를 이루던 때를 배경으로 하였고, 민수는 인터넷에서 만나고 호감을 품게 된 '벽속의 여인'과 실제로 만남까지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고, 제목과 같이 퀴즈쇼 라는 곳에 합류하게 된다.

퀴즈쇼 라고 하기에도 거창하다. 퀴즈장? 퀴즈 경마장같은 곳인데. 여하튼, 그런곳으로 흘러 들어간 민수는 벽속의 여인(이름이 지원인가..까먹었네 어제읽었는데 말이다 참)과 연락을 두절한 채로, 그 곳에서 퀴즈를 풀며 돈을 벌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쫓기듯 나오게 되면서 소설은 마무리가 된다.

 

민수의 무기력한 모습은 지금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년들의 모습이다.

이유야 가지각색이겠지만, 공부에, 취업에 허덕여하다가 번아웃된 20-30대 모습을 지금은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위 인터뷰에서 본것처럼, 2007년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없었나보다. 연재하면서,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어?'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말이다.

아마 그 이후부터 청년실업이 시작됐구나. 생각이 든다.

시트콤 논스톱에서 엔디가 '청년실업이~~~' 하던게 그 이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민수의 모습은 크게 낯설지 않다.

목표가 없이 그냥저냥 살아가는 삶.

굳이 어떠한 크고작은 목표를 가지지 않아도, 무기력하면 무기력한 채로 살아나가는 삶.

주변의 친구들은 달리고 있는데 자기는 제자리걸음은 커녕 뒤로 달려가고 있음을 인지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그러한 삶 말이다.

 

짠했다. 

마음이 아팠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은데, 자신감도 없고 행복해하지 않는 민수의 모습이 속상했다.

퀴즈라는 자신만의 특기?를 발견하면서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민수를 볼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그 안에서의 분열로 인해, 갑자기 쫓기듯 나오면서 다시 생 그지 꼴이 되어버린 민수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는데

그러고 끝이났다.

 

아니. 이게 끝이야?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 없었다.

이게다라고? 민수는!! 민수 여자친구랑은!!

웃기다.

전에 김영하의 다른소설도 이랬었던 것 같은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네. 단편소설이었나.

 

아무튼.. 퀴즈쇼는 전혀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내가 청년이어서 그렇게 느끼는지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부담없이 읽었으면 좋겠다.

다들 그렇게 다른사람의 삶을 바라보면서, 다른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